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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철학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3. 저편의 세계를 믿는 자들에 대하여

by 꾸준민 2022. 10. 2.

“ 아, 형제들이여,
내가 창조한 이 신은 다른 모든 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작품이자 망상이었다. ”

 

 닭이 달걀을 낳은 것인가, 달걀이 닭이 된 것인가?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일까, 인간이 신을 만든 것일까?

 

인간이 만든 신,

예전에 한 칼럼에서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짧은 글을 본 적이 있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그 칼럼은 신은 인간으로부터 창조됐다는 주장이었다.

그 글의 논리는 이렇다.

태초의 인간은 자연에서 살아남기 매우 나약한 존재였다.

그래서 번식을 통해 자신과 같은 DNA를 가진 인간들과 무리를 지어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종족 번식으로는 집단의 규모적 측면에서 한계를 넘어서기 힘들었고

결국 맹수나 자연재해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집단 규모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인간보다 월등한 특정 존재를 창조했다.

이것이 태초의 '신'이었다.

이때부터 같은 DNA를 지닌 인간뿐 아니라

이 특정 존재를 알고 있는 자들과도 무리를 짓게 되었다.

즉, 이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도 신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신'이라는 존재를 기준으로 집단 규모의 한계를 넘어섰고

인간은 먹이사슬의 최상단에 군림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는 처음으로 '신'이라는 것의 진화론적 기원을 알게 되었다.

 

이후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책 『총, 균, 쇠』에서 진화론적으로 해석한 '신'에 대한 근거를 볼 수 있었다.

 

총, 균, 쇠: 3부. 지배하는 문명, 지배받는 문명

유럽인들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시작된 식량 생산을 수용하여 다른 사회보다 빠르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고, 그 결과로 신대륙을 포함한 타 대륙에 진출하여 정복활동을 벌였다. 그렇다

on-friday.tistory.com

태초의 집단은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전쟁'이라는 수단을 활용했다.

하지만 전쟁을 치른다는 것은 누군가 희생을 한다는 것인데,

죽을 확률이 큰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개인의 삶에 있어 무의미한 선택이다.

또한, 이성적으로 생각해봐도 전쟁으로 희생당하지 않고 발전된 추장 사회

혹은 원시 국가에서 그 부를 누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그래서 원시 집단은 이 희생을 정당화시키고 강요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결국 원시 집단들은 '종교', 즉 '신'을 활용하여 그들에게 '희생정신'을 주입시킨 것이다.

종교를 활용하여 그들이 갖고 있는, 전쟁으로 인한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게 했다.

이렇게 종교의 역할은 현대사회까지 어어져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가는 교회와 같은 종교 시설을 활용하여 지금까지 우리에게 '희생정신'을 지속적으로 주입하고 있으며,

그를 통해 사회∙정치적으로 국가와 발을 맞춰 현대사회의 대규모 집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신'은 인간의 작품이자 망상이라는 것을 언 듯 이해할 수  있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신'이라는 것을 활용하여

개인의 삶을 지배하려는 사람들로부터 귀를 닫고

자신의 감정과 본능에 충실하라고 한다.

“ 저 탈인간화된 비인간적 세계는 천상의 무(無)다.
그리고 존재의 배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면 결코 인간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이다. ”

 

'존재의 배'에서 '배'는 감정, 본능의 뜻을 포함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신'의 말보다는 우리 내면에서 스스로에게 얘기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스스로에게 있어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지,

스스로에게 집중해  자신에 대해 알아내고

그 앎을 바탕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더 이상 타인이 주입한 그들의 행복과 삶의 기준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 창조하고 의욕적이고 평가하는 이 자아야말로 사물의 척도이자 가치다. ”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은 스스로의 의지로 일궈낸 것,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기준으로 보는 것이다.

학교, 회사, 교회, 정치 등 사회에서 정한 성적표, 성과, 관습에

내가 부합하려 하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 되진 못한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스스로의 가치를 정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은 사회가 가진 도구일 뿐이다.

“ 이 가장 정직한 존재인 자아, 그것은 몸에 대해 말하며 몸을 원한다. “

 

감정과 본능에 충실해야 한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에 맞추고자 노력하는 것,

사회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 정직하지 못한 것이며

무의미한 '희생' 일뿐이다.

자신의 감정과 본능에 충실하지 못한 것은 결국 스스로를 저버리는 일인 것이다.

“ 나의 형제들이여, 오히려 건강한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 건강한 몸, 완전하고 반듯한 몸은 더 정직하고 더 순수하게 말한다.
그리고 그 몸은 대지의 의미를 말한다. "

 

사회가 정한 기준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기 위해 애쓰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하는 그 순수한 말들에 귀를 기울이고 생각을 일깨워야 한다.

타인이 하는 말들이 아닌 오로지 내 몸이 하는 '순수한' 말들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내가 나에게 하는 날것의 말을 받아들이고, 표현하고, 행동하자.

 

내 자아를 이해하고 그 자아를 세상에 표출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행복으로 다가가는 유일한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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