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동굴에서 지낸 차라투스트라는
인간에게 ‘초인’을 가르치기 위해 하산한다.
“그대 위대한 별이여!
그대가 빛을 비추어줄 존재가 없다면 그대의 행복이란 게 무엇이겠는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어도, 그것을 베풀 수 있는 상대가,
그것을 받아 줄 수 있는 상대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무엇을 얻고자 욕심을 부려 사람을 잃는다면, 없는 것만 못하다.
내가 얻은 그 무엇의 가치는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로부터 정해진다.
그들이 인정해야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이 많은 광장에 도착하였고
군중을 향해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존재, 즉 초인에 대해 말한다.
“인간에게 원숭이란 무엇인가? 웃음거리 아니면 고통스러운 수치다.
초인에게 인간은 꼭 그와 같은 존재, 즉 웃음거리 아니면 고통스러운 수치다.”
종종 철들지 않은 사람, 세상을 좁게 보는 사람들을 ‘사람이 덜 됐다’라고 말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니체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깨닫길 바랬고
그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기 전 우리를 ‘원숭이’에 비유했다.
우리가 원숭이를 보며 그저 동물로 인식하는 것과 같이
인간이 깨달음을 얻게 되면 과거 자신의 모습을 인간이 원숭이를 보듯
‘웃음거리 아니면 고통스러운 수치’로 느껴진다고 비유한다.
우리는 깨달음을 얻고 성장을 해야 한다.
미래의 우리는 반드시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보고 ‘웃음거리’, ‘고통스러운 수치’로 느껴져야 한다.
만약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성장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과거의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도록 항상 발전해야 한다.
그는 초인을 향해 정진하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사랑한다,
인식하려고 살고, 언젠가는 초인으로 살려고 인식하려는 자를.
이러한 자는 자신의 몰락을 원한다.”
인식을 한다는 것은, 꾸준히 자기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것이다.
매 순간 나의 행동과 생각을 되돌아보고 어떻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
과거의 나 자신을 꾸짖을 줄도 칭찬으로 감싸줄 줄도 아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자신이 되고자 하는 원대한 모습을 그리고 정진해야 한다.
“나는 사랑한다,
자신을 위해 한 방울의 정신도 남겨두지 않고, 전적으로 자신의 덕의 정신이 되고자 하는 자를.
그는 이렇게 정신으로서 다리를 건너가려 한다.”
신념, 누구도 정답이라 말해줄 수 없다.
오로지 스스로가 깨달아야 하며 자기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신념을 구축했다면 그 신념을 무두질하여 어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도록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
그리고 그 신념을 믿고 나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나는 사랑한다,
너무 많은 덕을 가지려 하지 않는 자를. 하나의 덕은 두 개의 덕 이상이다.
덕은 운명을 묶어주는 매듭이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신념을 갖게 되면, 그 신념들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난다.
하나의 확고한 신념을 키워 나가다 보면 어느새 다른 신념들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원대한 신념으로서 자리한다.
그리고 그 신념은 곧 나의 삶으로 드러난다.
“나는 사랑한다,
감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되돌려주지도 않으며 자신의 영혼을 낭비하는 자를.
그는 언제나 베풀기만 할 뿐 자신이 가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되돌려 받을 생각으로 도와줄 거면 도와주지 말아라.
사람의 직감은 생각보다 뛰어나다.
무언가를 바라고 도와주면 도움을 받는 사람은 귀신같이 알아챈다.
그것은 결국 호의가 아니라 부담으로 다가간다.
되돌려주려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도움에 진심을 다한 사람은 결코 돌려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돌려주려는 마음을 알아채는 순간, 진심을 다한 사람의 마음이 불편해진다.
진심은 진심으로 받아야 한다.
“나는 사랑한다,
행동에 앞서 황금 같은 말을 던지고 언제나 약속한 것 이상으로 행하는 자를.
그는 자신의 몰락을 원하기 때문이다.”
말이 길어지면 화를 부른다. 말은 무겁고 진중해야 한다.
한 마디의 말이 열 마디의 말을 이길 수 있도록 무거운 말을 해야 한다.
말의 무게는 행동으로써 증명된다.
한번 행동하고 열 번 말하면 그 말이 외부에 노출된 액화수소와 같이 일순간 날아간다.
열 번 행동하고 한 번 말하자.
지구의 중력과 같이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말이 된다.
“나는 사랑한다,
자유로운 정신과 자유로운 가슴을 가진 자를. 그의 머리는 그의 심장에 있는 내장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그를 몰락하게 만든다.”
관례, 도덕, 예의, 규율, 규칙, 약속, 서약, 관습
고정관념을 만드는 모든 말들과 생각의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판단해야 한다.
내 마음이 어떤 것으로부터 구속되는지, 어떤 것으로부터 억눌리는지,
어떤 것이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지, 어떤 것이 나의 열정에 불을 붙이는지,
이성은 열정의 노예일 뿐이다.
생각의 틀을 깨고 열정으로서 나의 삶을 움직여야 한다.
그 열정은 시간의 밀도를 높여준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나를 더욱 단단하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산에 있었던 차라투스트라는 군중 속을 지나며,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이 짐승들 사이에 있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더욱 영리해지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더 영리해지고 싶다!
··· 하지만 나는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있다.
나는 나의 자부심이 언제나 영리함과 함께하기를 간청한다!
그런데 언젠가 나의 영리함이 나를 저버린다면 – 아, 영리함은 달아나기를 좋아한다!
그렇게 되면 나의 자부심도 나의 어리석음과 함께 날아가버리기를 바란다.”
영리함은, 내가 영리하다고 생각하지 못한 순간 찾아온다.
내가 영리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영리함은 달아난다.
영리함이 달아난 그 순간, 영리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자부심은 어리석음으로 바뀐다.
그러니 영리하다 자부하지 말고 항상 영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가 영리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리석은 짓을 면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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