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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경제

총, 균, 쇠: 3부. 지배하는 문명, 지배받는 문명

by 꾸준민 2022. 4. 13.

 

유럽인들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시작된 식량 생산을 수용하여

다른 사회보다 빠르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고,

그 결과로 신대륙을 포함한 타 대륙에 진출하여 정복활동을 벌였다.

그렇다면 유럽인들이 빠른 식량 생산을 시작함으로써 갖게 된 경쟁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병원균, 문자, 기술발전, 중앙 집권적 정치 체제이다.

 

4가지 경쟁력이 어떻게 식량 생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유럽인들이 비유럽인을 정복할 수 있었는지 알아보자.

 

첫 번째, 병원균

유럽인들이 신세계를 정복할 수 있게 해 준 사악한 선물,

인간을 죽게 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역사를 변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전투 중 부상으로 사망한 사람보다

병원균에 의해 희생된 사람이 더 많다.

 

그렇다면 식량 생산은 병원균과 무슨 관계인 것인가?

 

인류의 관점에서 보면 병원균은 우리에게

‘치명적인 증상(설사, 기침, 성기가 허는 것 등)’유발해

타인에게 전염시키고 심지어 전염이 이뤄지고 나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렇다면 병원균의 관점에서는 어떨까?

병원균도 기본적으로 생명체다.

생명체는 진화의 과정을 거치며 진화 중 생존에 최적화된 종만 살아남게 된다.

병원균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혹은 동물에서 사람으로 이동하며 진화를 하고

결국 인간의 몸에서 생존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낸다.

 

병원균에 있어 ‘최적의 방법’은 곧 인간에게 ‘치명적인 증상’으로 발현된다.

그들은 기침, 설사, 성 접촉 등을 활용하여 병원균을 널리 퍼뜨려 생존 확률을 높인다.

 

결과적으로 병원균은 인구가 충분히 많고 밀집되어 있어야만 지속될 수 있다.

감염시킬 새로운 아이들이 적당한 시기에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소멸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수렵 채집민이나 화전민의 경우는 소규모 무리 사회를 이뤄 활동하기 때문에

당연히 대중성 질병이 존속할 수 없었다.

 

반면 농경민들은 정주형 생활을 통해 대규모 무리 사회를 이뤘으며,

심지어 가축 혹은 자신들의 똥과 오줌을 모아서

사람들이 일하는 밭에 비료로 뿌려 분뇨 속에 섞인 세균이나

기생충이 더욱 쉽게 새로운 피해자를 감염시킬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일찍이 정주형 생활을 시작한 유럽인들은

유라시아의 가축화된 군거 동물을 많이 기르고 있었다.

유럽인들은 가축과의 교류로 인해 각종 질병으로부터 진화를 이뤘고

그 결과 질병에 대한 면역체계를 갖출 수 있었는데,

비유럽인들은 유럽보다 정주형 생활이 늦어졌을 뿐만 아니라

아메리카의 경우는 대형 포유류가 약 13000년 전인 최종 빙하기 말기에 80%가량이 멸종되어

가축화를 이룬 동물이 단 5종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여러 병원균을 경험하지 못한 비유럽계 원주민들은

질병에 대한 면역체계를 갖추지 못한 체 유럽인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유럽인들이 여러 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던 과정을 깊게 이해할 수 있다.

먼저 무기류, 기술, 정치 조직 등에서 유럽인들은

그들이 정복한 비유럽인들에 비해 크나큰 이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거기에 추가적으로 각 대륙에 퍼뜨린 ‘사악한 선물’,

즉 병원균으로 소수의 이주민만으로도

남북 아메리카를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의 원주민을 대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진화된 각종 병원균을 전파하지 않았다면

유럽이 다른 대륙으로 팽창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두 번째, 문자

거리와 시대를 막론하며 정확하고 자세하게 풍부한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

엄청난 가치를 지닌 문자는 식량 생산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기에

어떤 민족은 발달시키고 어떤 민족은 발달시키지 못하였을까?

초기 문자는 독립적으로 발명됐을 가능성이 높으며,

모두 사회적으로 계층화되고 복잡한 중압 집권적 정치 제도를 갖추고 있던 사회에서 탄생했다.

또한, 종교 및 국가의 선전이나 관료들의 기록 따위에 사용되는 등

쓰임새와 사용자가 제한되어 있었다.

 

초기 문자는 이렇듯 정치 제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었고

문자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업 관료를 두어 평민들에 의해 비축된 잉여 식량을 나눠주어야 했다.

문자의 사용목적과 사용자를 생각해보면 유랑형 민족은 당연히 문자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제도적 쓰임이 없었을 뿐 아니라 필경사들을 먹일 잉여 식량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자를 독립적으로 개발한 사회는 크게 수메르, 멕시코, 중국이 있다.

이외의 많은 사회가 문자를 독립적으로 개발하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바로 고립성에 있었다.

문자를 개발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문자를 사용하고 있는 인접한 사회가 있으면 문자에 대한 아이디어를 수용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식량 생산은 문자 발달의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식량의 생산이 전적으로 문자의 발달을 가져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충분조건’이라고는 볼 수 없다.

(만약 문자의 전파가 없었다고 가정한다면 수메르, 멕시코, 중국 이외의 많은 사회들도 문자를 만들어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세 번째, 기술 발명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다.

일반적인 견해로는 필요로 인해 발명이 이뤄진다고 본다.

하지만, 많은 발명품들은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발명된 이후 그 용도가 새로 발견되었다.

그래서 발명이 필요의 어머니가 된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유명한 발명가,

에디슨, 와트, 라이트 형제, 모스, 휘트니 등

모두 그들이 만든 발명품은 필요에 의해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발명이 이뤄진 후 그 쓰임새가 확장되었다.

 

발명품이 등장하면 그 발명품은 수용, 교체

이 두 가지 방식 중 한 가지 방식으로 전파가 이뤄진다.

수용은 말 그대로 발명품을 직접 보거나 들은 사회가 그 발명품을 채택하는 것이다.

반면 수용적이지 못한 사회는 발명품을 갖고 있는 사회보다 불리한 여건에 놓이게 되며

결국 불이익에 압도당하여 교체되고 만다.

 

인류의 발전은 크게 두 차례의 도약이 있었다.

첫 번째는 약 50000년 전 일어난 유전적인 변화(크로마뇽인의 등장)이고,

두 번째는 정주형 생활 방식의 채택이다.

정주형 생활방식은 인류 기술발전에 없어서는 안 될 도약이었다.

유랑형 생활방식은 이동생활 때문에 축적할 수 있는 소유물이 제한되어 있었다.

그 제한은 기술의 발전이 장기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방해했다.

 

하지만 정주형 생활로 접어들면서 소유물의 제한이 사라졌다.

 

그로 인해 토기, 베틀 등의 부피가 크고 무거운 발명품들을 축적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발명품들을 개발하는 전문가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잉여 식량을 축적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식량 생산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이후 기술발전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 발명에 대한 메모

   1. 기술이란 어느 영웅의 개별적인 행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누적된 행동을 통해 발전한다.

      와트, 에디슨, 라이트 형제, 모스 등은 모두 유능한 선후배가 있었고

      그들은 사회가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시기에 발명품을 개량했던 것이다.

   2. QWERT자판기는 사실 타이핑 속도를 최대한 늦추도록 고안된 것이다.

      1873년 당시의 타자기는 인접한 글자들을 연달아 빠르게 치면 글쇠들이 엉켜 버렸으므로

      제조업자들이 타자수들의 타이핑 속도를 늦춰야 했다.

 

네 번째, 중앙 집권적 정치 체제

인류의 사회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발전해왔다.

무리 사회 → 부족 → 추장 사회 → 원시국가

집단으로서의 힘이 극대화되는 시점은 ‘추장 사회’부터였다.

추장 사회는 중앙 집권적 정치 체제로 사회를 운영하였는데,

중앙 집권적 정치 체제는 군사력과 물자를 집중시킬 수 있고

공인된 종교를 퍼뜨려 구성원의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기 때문에

집단으로서의 힘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

(여기서 종교의 역할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애국심은 곧 군대가 기꺼이 목숨 걸고 싸울 수 있게 만드다.

 현대 국가에서도 학교, 교회, 정부 등이 국민들에게 이 같은 희생정신을 강력히 주입시키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런 태도가 인류 역사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변화임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상위 단계인 원시 국가는 추장 사회의 연장선으로

중앙 집권적 정치 체제를 보다 큰 사회에서 실행한 것으로 보면 된다.

 

추장 사회나 원시국가는

원수나 관료, 그 밖의 전문직들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식량의 재분배를 해야 했다.

재분배를 위해 조세의 선행 형태로 식량을 거둬들였고

그 식량을 활용하여 사회를 운영하였다.

 

결과적으로 식량 생산이라는 기반이 형성되어 있어야만

중앙 집권적 정치 체제를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유럽이 비유럽인들보다 식량 생산을 빠르게 시작하여 얻게 된 경쟁력을 살펴보았다.

정리를 하자면,

병원균, 문자, 기술발전, 정치 체제 이 네 가지가 정복의 필수요소였으며

유럽인들은 타 대륙보다 빠르게 정복의 네 가지 요소를 갖춰 비유럽인들을 정복하였다.

정복의 목적과 결과물은 곧 식량 생산의 확충이었으며,

결국 정복이 정복을 낳는 순환으로 인해 유럽은 타 대륙들을 지속적으로 점령해나간 것이다.

 

 

그렇다면, 유럽을 제외한 다른 대륙은 무엇 때문에 유럽에 뒤쳐지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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