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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경제

총, 균, 쇠: 4-1부. 인류사의 발전적 연구과제와 방향 [오스트레일리아·중국]

by 꾸준민 2022. 4. 14.

지금까지는 유럽이 다른 대륙보다 경쟁의 우위에 설 수 있었던 조건들에 대해 알아봤다.

 

간략히 말하자면,

유럽은 병원균, 문자, 기술 발명, 정치 조직을 갖춰 다른 대륙으로 팽창 활동을 할 수 있었고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높아 정복을 쉽게 이룰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남북아메리카, 아프리카는

어떠한 이유 때문에 유럽보다 뒤처지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오스트레일리아

모든 대륙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대륙으로

인간 사회의 대륙간 불균형에 대한 이론들을 검증하는 결정적인 판단 기준이 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타 대륙과 비교하여 가장 건조하고 평평한 척박한 대륙이며 기후도 종잡을 수 없다.

둘째, 유럽인들이 가장 마지막에 도착한 대륙이다.

셋째, 모든 대륙을 통틀어 가장 특이한 인간 사회가 존재하였고, 인구도 가장 적었다.

 

유라시아와 가장 극명한 환경을 가졌기 때문에 대륙간 불균형을 검증하기 좋은 이점을 갖고 있다.

 

40000만 년 전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석기 날을 갈아서 사용하는 등 인간 사회가 어느 대륙보다 빠르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왜 유럽을 정복하지 못하고 정복을 당했을까?

 

오스트레일리아는 8000년 전 해수면의 상승으로 뉴기니와 분리되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호주와 뉴기니가 가진 환경적 차이는 인류 사회 발전에 극명한 차이를 만들게 되었다.

 

심지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큰 강(머리 달링 강) 조차도

가뭄이 들면 몇 달씩 흐름이 끊어지기 일쑤다.

 

그렇다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일찍 식량 생산을 시작한 뉴기니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자.

(뉴기니는 초승달 지대와 중국을 비롯한 세계 몇몇 지역과 더불어 식물의 작물화가 독립적으로 시작된 중심지다.)

 

빠른 식량 생산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높은 인구밀도를 형성한 뉴기니,

하지만 뉴기니도 지형에 따라 수렵 채집민으로 남아있는 사회가 있었다.

그 이유는 식량 생산으로부터 시간당 얻을 수 있는 열량이 수렵 채집보다 낮았기 때문인데,

농경 생활이 수렵 채집 생활과 경쟁할 수 없는 환경일 때는 결국 수렵 채집민으로 남아있게 된다.

 

뉴기니는 이렇게 수렵 채집 생활이 남아있음과 동시에

굴곡이 심한 산지의 힘든 지형으로 인해 좋은 여건(비옥한 토양,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 등)

가졌음에도 유럽과 아메리카에 비해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뉴기니의 저지대는 늪이 즐비하고 고지대는 가파른 능선과 비좁은 협곡이 있어

전통적인 뉴기니에서 대부분의 고지인들은 평생 동안

자기 집에서 반경 16km 이내를 벗어나지 못할 만큼 이동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지형은 부족 간의 교환을 막아섰고

결과적으로 부족 내 문화적∙사회적 단절이 사회 전반적인 발전을 늦추게 되었다.

(유럽의 경우 교환을 통해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균형 잡힌 식사를 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통합을 앞당겨 주었다.)

농업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채택된 수렵 채집 생활은 인구 밀도를 높이지 못했고

결국 금속기, 문자, 정치적 복잡한 사회 등의 발전을 늦추는 원인이 되었다.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뉴기니는 유럽의 침략에 대한 저항력은 없었지만

유럽인들의 정복 계획은 뉴기니의 말라리아 등 열대성 질병으로 인해 번번이 좌절을 맞게 되었다.

결국 유럽은 뉴기니의 정복을 포기하고 말았다.

반면 일찍이 열대성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갖춘 인도네시아인은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네덜란드로부터 뉴기니의 서반부를 넘겨받아 식민화를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뉴기니보다 열악한 환경을 가졌던 오스트레일리아는 유럽의 침략을 피할 순 없었다.

‘운이 좋지 않게도’ 오스트레일리아는 유럽식 농경이 적합한 환경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열대성 질병이 없었기에 유럽이 손쉽게 손을 뻗칠 수 있었다.

 

중국

세계적으로 인구가 가장 많은 6개국(미국,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러시아, 중국) 중에서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최근에 와서 정치적 통일을 이룩한 나라들이며,

지금도 수백 개 언어와 민족 집단이 공존하고 있는 도가니다.

중국은 B.C 221년 이미 정치적으로 통일되었고 문자 또한 하나의 체계로 이뤄져 있다.

출처: 밀덕형의 삼국지 이야기

중국의 정치적 통일이 타 대륙보다 쉽게 이뤄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두 강(장강, 황하)이 운하로 연결된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지역적 교류는 대륙의 가로축 방향으로 쉽게 이뤄지고

세로축 방향으로는 이뤄지기 어렵다.

하지만 중국은 두 강이 남북방향으로 연결되어 있어 세로축으로도 문물의 전파가 쉬웠고

이로 인해 정치적 통일을 빠르게 이룰 수 있었다.

정치적 통일이 이뤄진 중국은 뉴기니로 이주를 시도하는데

이것을 ‘오스트로네시아인의 팽창’이라고 부른다.

그 증거로는 인도네시아인과 필리핀인이 남중 국인과 유사하다는 것과

오스트로네시아 어족의 대부분의 어파가 남중국이 고향인 것이다.

고고학적으로 타이완의 이주가 남중국 해안으로부터 시작된 팽창의 첫 단계로 본다.  

 

오스트로네시아(중국)의 팽창은 두 가지 갈래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두 번째는 뉴기니이다.

첫 번째 팽창은 토착민이 모두 사라질 만큼 오스트로네시아인으로부터 동화되었던 반면,

두 번째 팽창은 반대로 침입자인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이 뉴기니에 정착하지 못하였다.

두 팽창의 결과가 다른 이유는 역시나 식량 생산의 역할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일찍이 식량 생산이 진행된 뉴기니는 오스트로네시아인 만큼의 저항력이 있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간석기조차 갖지 못한 소수의 수렵 채집민들이 살고 있어

오스트로네시아의 팽창에 저항하지 못했던 것이다.

(참고로 오스트로네시아인은 뉴기니를 넘어서 뉴질랜드 인근 채텀 제도까지 팽창을 하고서야 태평양 탐험을 완료하였다.)

 

어째서 중국은 정치적 통일과 팽창 능력이 있었음에도 유럽에 뒤처지게 되었을까?

 

바로 정치적 통일이 중국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정치적 통일이 뒤늦게 이뤄진 유럽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국가가 존재했고

그로 인해 콜럼버스의 의견도 수용되어 신세계에 진출을 할 수 있었다.

(콜럼버스는 다섯 번의 시도 끝에 수백 명이 넘는 유럽 군주 가운데 한 명을 설득하여 신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정치적으로 통일이 되어 한번 정부에서 내린 결정은

전역으로 퍼져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용할 수 있는 유동성을 갖지 못했다.

이렇게 중국과 유럽은 환경적 차이가 아닌 후천적인 정치적 성향으로 인해 큰 차이를 빚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오스트레일리아중국이 유럽의 발전에 한발 늦은 이유들을 살펴보았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식량 생산을 독립적으로 시작했음에도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였다.

반면 중국은 식량 생산도 독립적으로 이루고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었음에도

정치적인 요인으로 유럽을 앞서지 못하였다.

 

그럼 다음장을 통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어떤 이유로 경제 발전이 늦어졌는지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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