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아나라, 나의 벗이여, 그대의 고독 속으로!
내가 보기에 그대는 위인들의 소음에 귀먹고,
소인배들의 가시에 마구 찔리고 있다. ”
사람은 생존을 위해 집단을 이루어 살아왔다.
집단을 이끄는 소수 집권자인 위인의 말과 행동만이 정답이 된다.
그래서 집단은 공동체라는 명목하에 때로는 개인의 의견을 간과하고 무시한다.
우리는 그런 집단 속에서 굴복하고 상처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우리가 처해있는 이런 환경을 시장,
그 시장을 구성하는 사람들을 파리 떼라 말하는 것 같다.
" 숲과 바위는 그대와 더불어 기품 있게 침묵할 줄을 안다.
···그 나무는 조용히 귀 기울이며 바다 위로 넓은 가지를 펼치고 있다. "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환경이 시장과 파리 떼라면
반대로 우리를 치유해 주는 것은 숲과 바위라 할 수 있다.
시장과 같이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언제나 소문이 무성해진다.
때로는 실체가 없는 말들이 만들어지고,
때로는 거짓뿐인 말들이 진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숲과 바위는 다르다.
숲과 바위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 우두커니 서, 본질에 충실할 뿐이다.
그렇게 꾸밈없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그곳에선 어느 것도 우리의 생각을 바꾸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모두 정답이 된다.
내 자신이 온전히 인정받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숲과 바위로부터 치유된다.
" 세계는 새로운 가치의 발명가를 중심으로 돌아가며, 눈에 보이지 않게 회전한다.
그러나 군중과 명성은 배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사람들 사이로 뛰어든다.
사람들과 부딪혀가며 성공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생각과 행동이 정답이기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틀린 것이고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제 아무리 정답을 말하더라도 오답이 된다.
그 속에서는 본질을 지켜내기 힘들 뿐만 아니라 성공과도 멀어지게 된다.
진정한 성공은 후미진 어느 모퉁이에서 시작한다.
그곳에서는 어떤 방해도 없다.
유일무이한 생각을 끄집어낼 수 있고 그 생각의 옳고 그름을 명확히 판단할 수 있다.
즉, 본질을 지켜낼 수 있다.
그렇게 순수하게 본질을 갖춘 생각이 세상을 바꾸는 초석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 시장은 성대하게 차려입은 어릿광대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군중은 자신의 위인들을 자랑스러워한다.
군중에겐 그들이 순간의 주인인 것이다. ”
사회생활은 한 편의 연극과 같은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배역을 두고 인간들끼리 그 배역을 맡아 연기한다.
누구는 관리자를 연기하고 누구는 아르바이트생을 연기한다.
누구는 부장을 연기하고 누구는 사원을 연기한다.
의사, 판사, 선생, 공무원, 조경사···
갖가지 가면을 쓰고 사회의 구성원을 연기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가면을 주고 그 배역을 연기할 수 있게 해 준 조직의 장을 존경하며 그렇게 되길 원한다.
" 그러나 시간이 어릿광대들을 압박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대를 압박한다.
그들은 그대에게 ‘예’ 아니면 ‘아니오’를 듣고자 한다.
···이처럼 무조건적이고 억압하는 자들을 질투하지 마라!
지금까지 진리가 무조건적인 자의 팔에 매달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으려 한다.
“이 방법이 옳은 거예요.”
정답을 말하는 척, 자신의 의도를 전한다.
보이지 않게 강요와 압박을 하는 것이다.
생각과 관점, 입장에 따라 모든 것은 각각의 정답을 갖는다.
세상에는 한 가지뿐인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답이라는 핑계,
원래 그랬다는 핑계,
효율적이라는 핑계,
효과적이라는 핑계를 삼아 단지 자신의 말을 합리화하고 강요하는 것일 뿐이다.
“ 나는 그대가 독파리 떼 때문에 지치고, 백 군데나 쏘여 피투성이가 된 것을 본다.
그런데도 그대는 자존심 때문에 한 번도 화내지 않는다.
···그들의 독기 있는 부당함을 견디는 것이 그대의 운명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
회사를 입사했을 때 들었던 말이 있다.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회사생활을 잘하기 위한 조언이라고 들었던 말이다.
즉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아야 하며,
욕을 들어도 못 들은 것처럼 행동해야 하며,
부당한 행동을 보아도 못 본 척 넘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모든 것을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정말 회사생활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색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주변 동료들과 어울릴 수 있으며,
상사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아 예쁨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당사자는 자신을 잃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상처를 입게 된다.
그 상처는 점점 커지고 곪는다.
상처받는 것이 익숙해져 시간이 지나면서 고통에 무뎌지겠지만,
상처는 자꾸 번져간다.
그리고 그 상처는 이내 나를 잡아먹는다.
우리는 이렇게 참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 그들은 그들의 편협한 영혼으로 그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그들에게 그대는 언제나 미심쩍은 존재다!
많이 생각해야 하는 모든 것은 미심쩍은 것이 된다. ”
우리는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런 만큼 타인도 나에 대해 완벽히 알 수는 없다.
그래서 타인은 스스로를 기준으로 상대방을 바라본다.
그리고 스스로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궁금해하고
때로는 틀렸다고 생각하여 바로잡으려 한다.
하지만 그 의도를 들키지 않기 위해 수많은 얘기들을 늘어놓는다.
본질이 보이지 않도록 감싸는 것이다.
본질을 감싸고 있는 껍데기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 않기에,
많은 생각을 남긴다.
본질은 결코 우리를 헷갈리게 하지 않는다.
많이 생각해야 하는 모든 것은 미심쩍은 것이 된다.
“ 달아나라, 나의 벗이여, 그대의 고독 속으로.
거친 바람이 사납게 불어오는 곳으로!
파리채가 되는 것, 그것은 그대의 운명이 아니다. ”
사람들은 사회에서 부는 강한 바람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 속으로 점점 더 파고든다.
사람들이 바람을 막아줄 순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나를 잃게 된다.
‘나’로서 살기 위해서는 모진 풍파를 견뎌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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