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A의 마리너 호, 바이킹 호, 보이저 호, 갈릴레오 호 탐사 프로젝트의 일원이었으며
천문학 및 우주과학 교수인 칼 세이건,
그는 책 『창백한 푸른 점』을 통해
거대한 우주 속에서 인류가 위치한 좌표를 보여주며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의 생각을 공유한다.
우리는 여기에 있다.
어릴 적 들었던 동요 앞으로♪에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아가면~
이라는 가사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둥근 지구를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NASA의 아폴로 17호 발사 프로젝트 덕분이다.
(이전까지는 지구의 해안선을 구분 지어 찍어, 이를 지구본으로 번역을 했던 것이다.)
당시 아폴로 17호가 달에 도달할 수 있었기에
지구의 실제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폴로 17호 탐사를 통해 얻은 지구의 사진
칼 세이건은 말한다.
" 대양의 푸른색,
사하라 및 아라비아 사막의 황적색,
사하라 및 아라비아 사막의 황적색,
삼림지대와 초원지대의 갈색 띤 초록색 등을 분간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진에서는 인간의 흔적,
즉 인간이 지구 표면에 가했던 작업의 흔적,
혹은 인간이 만든 기계나 인간의 모습의 그 어느 것도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의 존재를 지구와 달 사이의 지점에서 느끼기에는
우리 인간이 너무나 미소하고 그 능력은 너무나 미약한 것이다. "
인류는 18세기(1780년~1840년) 산업혁명을 맞이하면서 급속도로 발전을 하기 시작했다.
지구의 곳곳에는 항만과 다리, 고층빌딩, 인공 자연 등을 지으며 점차 지구를 정복해 나갔다.
최근 들어서는 정말 그 발전의 정점을 찍어 우주까지 뻗어 나가려고 한다.
실제로 얼마 전,
가수 탑(최승현)이 우주여행을 간다는 뉴스를 보고
정말 인간이 가진 기술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뿐,
아폴로 17호가 찍은 지구의 사진을 보면
거대해졌다고 생각하는 그 인류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확인을 할 수 없다.
인류가 아무리 발전해도 지구를 대신할 순 없었다.
인류가 아무리 영역을 넓힌다 해도 지구가 품은 자연도 넘어서지 못했다.
그는 보이저 탐사 계획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지구의 모습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토성을 지나 보이저 1호의 임무가 완료되고 나서
즉시 광각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렸다.
" 우리의 기쁨과 슬픔, 숭상되는 수천의 종교, 이데올로기,
경제이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민, 서로 사랑하는 남녀, 어머니와 아버지, 앞날이 촉망되는 아이들,
발명가와 개척자, 윤리도덕의 교사들, 부패한 정치가들,
<수퍼스타>, <초인적 지도자>, 성자와 죄인 등
인류의 역사에서 그 모든 것의 총합이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작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 "
인류를 품고 있던 지구도 배신감이 들만큼 작은 존재였다.
지구는 거룩한 발전을 이룬 인류의 터전이 되어주며
인류보다도 거대한 자연을 품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지구도 결국 은하계에서는 하나의 점에 불과했다.
우리가 매일 밤 보게 되는 그 별들만큼 작은 존재였던 것이다.
사진 속에서 인류는 지구라는 점 안의 잉크분자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떻게 든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좋은 대학을 가려고 눈을 붉히고 공부를 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려고 교내 프로젝트, 인턴활동, 자격증 취득 등
잠을 줄여가며 '나'를 만들어 낸다.
취직하는 순간, 직장생활을 연명하기 위해
간과 쓸개를 내어놓고 살아가게 된다.
나름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자신의 행복을 미뤄가며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결국 작은 점과 같은 우주에서 티도 나지 않은 발버둥에 불과한 것이다.
" 우리의 거만함, 스스로의 중요성에 대한 과신,
우리가 우주에서 어떤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망상은
이 엷은 빛나는 점의 모습에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우리 행성은 우주의 어둠에 크게 둘러싸인 외로운 티끌 하나에 불과하다. "
우리가 살아가려는 이유,
나름이 가진 원대한 목표들,
앞으로 나아가려는 우리들의 무거운 발걸음을 가벼이 여길 필요가 있다.
매 순간 다가오는 행복만큼이나 무거울 수 있는 발걸음인지,
티끌만 한 작은 점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면서까지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잘 살아봤자 작디작은 점 속의 존재에 불과하며
못 살아봤자 작디작은 점 속의 존재다.
인류는 사실 살아있음 자체가 목적을 이룬 것이고
지구가 품은 자연을 느껴가며 살아가는 것이 존재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은하계에서 태양계에 위치하며,
태양계에서는 지구라는 좌표에 위치한다.
우리는 그 좌표 표면 묻은 잉크보다도 작은 존재라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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