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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철학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8. 산비탈의 나무에 대하여

by 꾸준민 2023. 1. 4.

차라투스트라는 '얼룩소'라는 도시의 마을을 둘러싼

산 안쪽을 걸어가다 한 젊은이가 나무에 기대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지친 모습을 한채 골짜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차라투스트라가 말을 걸었다.

 

" 이 나무를 두 손으로 흔들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거네.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바람은 이 나무를 괴롭히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구부리지.
이처럼 우리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가장 심하게 구부려지고 괴롭힘을 당하는 것일세. "

 

'두 손'은 직접적인 명령,

'바람'은 나를 둘러싼 환경이라는 것으로 치환시켜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 나에게 A라는 행동을 하도록 명령하면

그 명령을 실행할지 고민하기 전에 반감이 생긴다.

하지만 나의 선택지가 A라는 행동밖에 없다면

반감을 생각할 겨를이 없이 행동을 하게 된다.

 

심리학적으로는 '넛지 효과'라고도 하는데,

이처럼 직접적인 지시나 명령보다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나 대중의 행동을 유도하기가 쉬운 법이다.

 

우리는 인지하진 못하고 있지만 우리를 움직이려 하는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

나무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구부러진다는 것에 저항하지 못한 것과 같이,

우리도 지금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저항할 겨를 없이 구부러지고 있는 것이다.

 

 

 

" 나무는 높고 밝은 곳으로 오르려 하면 할수록,
그 뿌리는 더욱더 힘차게 땅속으로, 아래쪽으로, 어둠 속으로,
깊은 곳으로 악(惡) 속으로 뻗어가려고 하지. "

 

발성을 배우는 과정에서 우연히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다.

고음을 잘하고 싶어서 고음을 연습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연습한 만큼 고음이 늘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중 발성 강사님께서 고음 연습을 중단시키고

저음을 연습시키기 시작했다.

고음 연습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한동안 저음만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음 연습을 할 때는 고음과 다르게

구강 구조와 성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세심하게 느껴볼 수가 있었다.

아무래도 저음이다 보니 긴장을 할 필요도 없고

발성을 길게 할 수 있다 보니 가능했던 것 같다.

이렇게 저음을 통해 구강과 성대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나니

소리를 낼 때 어떤 자세를 취하고 어디 힘을 써야 하는지 이해가 됐다.

고음이 한층 더 수월해졌다.

나는 이렇게 고음의 반대 영역인 저음을 통해 고음 음역대가 성장하는 것을 경험했다.

 

책에서 나온 말이 내 경험과 유사한 것 같아 공유하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면 삶도 비슷한 것 같다.

행복을 느끼고 싶을수록 사실 행복에서 멀어질 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행복만 느끼고자 그 순간에만 머무르려 하면

오히려 익숙해져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불행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면

행복이 행복으로 와닿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익히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불행, 좌절, 실패, 슬픔, 포기 등과 같은 요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진정 피해야 할 것들인지,

진정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들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분명 이 요소들이 있기에 우리가 팔십 년 이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 거다.

  

 

 

" 고귀한 자는 새로운 것과 새로운 덕을 창조하려 한다.
반면에 선한 자는 옛것을 원하며, 옛것이 보존되기를 원한다. "

 

누군가가 가르쳐주고, 누군가의 말을 따른다는 것은

기존의 것을 익힌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이 될 수 없다.

 

'새로운 것', '새로운 덕'을 창조한다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의지를 따른다는 것이다.

 

창조하는 사람들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

가야 하는 길이 아니라 가고 싶은 길을 택한다.

 

이 삶은 누구나가 원하는 자유를 쟁취한 삶이다.

 

한 편의 광고와 같이 매혹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창조를 하는 삶에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들이 있다.

혼자가 될 수도 있다는 외로움과 실패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외로움'과 '두려움'을 자의로 짊어진 다는 것은

'행복'을 포기하는 삶이 될 수도 있기에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고귀한 자'라 불리는 것이다.

 

 

 

" 고귀한 자가 뻔뻔스러운 자, 조롱하는 자, 파괴하는 자가 되는 것이 위험하다.
아, 나는 최고의 희망을 잃어버린 고귀한 자들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은 이제 높은 희망이라면 모두 비방한다. "

 

우리는 종종 '외로움', '두려움'과 같은 감정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주저앉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현실의 벽을 인정하고 자신의 위치에 머무르게 된다.

어떤 사람은 현실의 벽을 인정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여 자기와 같이 주저앉히려 한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이 '뻔뻔스러운 자', '조롱하는 자', '파괴하는 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다고 단언하며,

다시 노력하는 삶을 살길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현실의 벽 너머에 대해 얘기하면 부정하고 듣지 않으려고 한다.

행여나 누군가 그 벽을 넘게 되면 자신의 포기가 부정당하기 때문에

되려 더 못 넘어가도록 다른 사람을 방해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 그대 영혼 속의 영웅을 버리지 마라!
그대의 최고의 희망을 신성하게 간직하라 "

 

'희망'이라는 것은 삶의 원동력이 되어준다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자신이 꿈꾸는 미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기에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분명 가는 길이 힘들 수도 있고 몇 번의 실패로 좌절할 수도 있다.

그런데 끝까지 나아가게 되면 결국 이루게 된다.

나도 이런 경험이 몇 번이나 있었기 때문에

이 문구가 마음에 와닿았던 것이다.

 

때로는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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