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클루지』는
뉴욕대학 심리학과 교수 개리 마커스가
인간의 마음을 진화심리학적으로 풀어쓴 책으로
인간의 마음상태가 허점 투성이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근거를 제시한다.
그 근거는 인간의 마음이 결코 계획적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있던 것을 토대로 한 겹 한 겹 쌓아 올리며 진화했기에
빈틈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책에서는 이것을 '클루지(Kluge)'라고 표현한다.
*클루지 :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해결책
우리는 시대가 만든 환경에 맞춰 '적절하게' 진화된 것이다.
" 발전소 기술자들에게 전체 체계의 작동을 멈추는 것이 허락된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낡은 체계들을 다 뜯어 버리고 새롭게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력을 끊임없이 공급해야만 했기 때문에 야심 찬 재설계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
생명체는 끊임없이 번식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연속적인 삶에서 진화를 이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환경에 최적화된 뇌를 만들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저 생존을 위해서 투박하게 진화해온 것이다.
투박한 진화는 과거의 잔재를 고스란히 머금고 있다.
대표적으로 기억과 행동 체계가 그렇다.
과거, 정글과 속에서는 순간의 빠른 판단만이 생존을 보장해 줬는데,
그 때문에 인간의 뇌는 저장된 기억들을 빠르게 꺼내올 수 있는 맥락 기억 시스템을 갖췄으며,
순간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반사 체계가 발달했다.
현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
원시 시대에 만들어진 낡은 시스템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맥락 기억: 병렬적 기억 장치

인간의 뇌는 기억을 병렬방식으로 저장해 놓는다.
모든 기억이 맥락이나 단서를 기준으로 저장되며,
그 기억들은 특별히 우선순위를 갖지 않는다.
맥락기억의 가장 큰 특징은 빠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정보가 병렬식으로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대략적인 단서만 봐도 기억을 꺼내올 수 있는 것이다.
맥락기억은 단순하고 적은 양의 정보를 저장할 때는 문제가 없는데,
정보의 양이 많고 복잡해지면 꺼내오는 기억이 부정확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현대 시대에서 우리의 판단이 종종 세련되지 못한 이유가
바로 맥락기억 시스템 때문인 것이다.
방대한 정보로 인해 같은 맥락 안에 무수히 많은 정보가 담기게 됐고
복잡하게 얽힌 단어들의 관계로 인해 작은 단서만으로는
정확한 정보를 찾아내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이런 낡은 기억 시스템은 우리에게 무의식적인 습관들을 만들어 줬다.
예비효과
우리는 어떤 것을 기억해 낼 때면 대부분 단서나 맥락에 근거하게 된다.
" '교수', '지적인' 같은 단어를 미리 접했던 사람들은
'축구장 난동꾼', '어리석은'같이 덜 고상한 표현들을 접했던
사람들보다 지적인 과제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
'교수', '지적인'이라는 단서는 이와 유사한 단어로 구성된 기억군을 활성화한다.
그래서 활성화가 되지 않은 집단에 비해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효과로 우리는 부엌에 있을 때 요리에 대한 정보를 더 잘 기억해 낸다고 한다.
기억 외곡 간섭
우리의 뇌는 앞서 경험한 것들이나 들은 것들에 의해 기존의 기억을 왜곡하게 된다.
" '세게 충돌하다'라는 동사를 들은 사람들은
자동차들이 시속 40.8마일로 달리다가 충돌했다고 평가한 반면에,
'충돌하다'라는 동사를 들은 사람들은 시속 31.8마일로 평가했다. "
평가를 하기 전에 들었던 각각의 단어가 서로 다른 기억의 단서로 작용하여 사람들의 평가를 왜곡한 것이다.
이 외에도 단어뿐만 아니라 사소한 행동도 기억의 맥락을 자극하여 판단이나 감정에 영향을 주게 된다.
" 웃으면 행복해진다. "
웃음으로 인해 웃게 된 기억 맥락을 떠올려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 손바닥을 위로 향했던 사람들은 유명 인사들을 긍정적으로 더 많이 분류한 반면,
손바닥을 아래로 향했던 사람들은 유명 인사들을 부정적으로 더 많이 분류하였다. "
우리는 보통 상대방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면 손바닥이 위로 가는 '접근'하는 자세를 많이 취하고
부정적으로 인식하면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는 '회피'하는 자세를 많이 취한다.
그래서 손바닥을 어느 방향으로 두느냐에 따라 유명 인사에게 느끼는 감정이 달라진 것이다.
단순 친숙 효과
우리가 낡고 오래된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성향도 낡고 오래된 것에 머무르게 된다.
" 사람들은 자기 이름에 들어간 글자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애착을 보였다.
···유명한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이라기보단,
친숙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그래서 좋아한다는 감정을 갖는 것의 대부분이 익숙하거나
오랜 기간 동안 봐왔던 것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보통 평소에 즐겨 먹던 음식을 떠올리고
그것을 먹음으로써 위안을 삼는 것이다.
이렇게 낡은 기억 체계는 현대 사회에서 섣부른 판단을 야기한다.
반사 체계: 본능적인 행동

또 한 가지 우리가 갖고 있는 반사 체계도 낡은 전유물 중 하나이다.
" 진화는 우리에게 상이한 능력을 지닌 두 체계를 남겨 주었다.
하나는 틀에 박힌 일을 처리할 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반사 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틀을 벗어나 생각할 때 유익한 숙고 체계다. "
원시 인류는 생존을 위해 대부분 반사 체계를 사용하였다.
이후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고 인류가 발전하면서
점점 논리와 추론을 해야 할 빈도가 높아졌다.
이때부터 인류의 본능적인 행동은 생존을 위한 답이 되지 못했다.
주변 상황을 점검하고 갖고 있는 지식들을 활용하여
현명한 답을 도출할 필요가 있었기에 숙고 체계를 발달시키게 된 것이다.
그렇게 숙고 체계의 중추인 전전두피질이 기존 뇌 최상단에 발달하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은 기본적으로 오래되고 익숙한 것을 자주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숙고 체계를 사용하려면 정신을 집중하고 본능을 억눌러야 하기에 에너지 소모가 크고 불편하다.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
불편한 것보다는 편한 것,
매 순간 반사 체계는 우리 시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려 한다.
"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곤하거나 마음이 산란한 경우에
숙고 체계는 가장 먼저 작동을 멈추는 경향이 있다. "
지치고 힘들 때 그리고 집중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대부분 반사 체계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저자는 우리가 가진 이러한 클루지들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 우리가 진화해 온 현재의 모습 그대로를 솔직히 들여다볼 때,
우리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불완전하지만 고귀한 우리의 마음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인간은 결코 계획된 작품이 아니다.
진화의 관성으로 인해 이미 있던 기반에 얹고 또 얹어져서 만들어진 존재다.
과거의 유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이를 통제하고
진화를 통해 얻은 신문물과 조화를 이뤄낼 줄 알아야 한다.
클루지를 극복하는 열세 가지 방법
저자는 연구 끝에 깨닫게 된 클루지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공유한다.
첫 번째, 대안이 되는 가설들을 되도록 함께 고려하라.
" 올바른 선택은 종종 최종 선택한 길뿐만 아니라,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이해도 필요로 한다. "
우리에게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면,
한 두 가지의 선택지를 두고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 선택하지 않을 선택지라 해도 다른 대안들을 고민해 보는 것이
현명한 판단으로 생각을 이끌어 준다는 것이다.
단순히 대안 목록을 작성하는 것만으로도 추론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대안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단순히 반대로 생각하기만 해 봐도 여러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문제의 틀을 다시 짜고 질문을 재구성하라.
근무시간 단축이 임금 삭감인가?
아니면 여가시간의 보장인가?
살코기 20%의 돼지고기를 살 것인가?
지방 80%의 돼지고기를 살 것인가?
사태를 회의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상대의 질문을 재구성해봄으로써
시야를 넓게 가져갈 줄 알아야 한다.
세 번째, 상관관계가 곧 인과관계가 아님을 명심하라.
네 번째, 여러분이 가진 표본의 크기를 결코 잊지 말라.
'큰 수의 법칙'은 누구나 안다.
표본이 많을수록 오차가 적어지고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산다.
다섯 번째, 자신의 충동을 미리 예상하고 앞서 결정하라.
" 오디세우스는 사이렌(Siren)의 유혹에 저항하기 위해 스스로를 돛대에 묶었다. "
앞서 말했듯 우리의 본능은 반사 체계가 잡혀있다.
그러나 현실은 숙고 체계로 다져져 있기 때문에 반사 체계의 판단은 대부분 현명하지 못한 판단이 된다.
즉, 충동적인 판단은 현명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충동적인 순간보다는 미래를 계획하는 숙고적인 순간을 살아야 한다.
여섯 번째, 막연히 목표만 정하지 말고 조건 계획을 세워라.
목표를 성공시킬 확률을 높이는 방법은
구체적인 조건 계획의 형태로 바꾸면 된다.
" 감자튀김을 보면 그것을 멀리하겠다. "
X이면 Y이다의 형태로 바꾸면 되는 것이다.
일곱 번째, 피로하거나 마음이 산란할 때는 되도록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말라.
"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승리의 조건이란 바로 적절한 휴식과 최대한의 주의집중이다. "
앞서 말했듯 피로할수록 반사 체계에 의존하게 된다.
주의가 산만할 때도 마찬가지다.
여덟 번째, 언제나 이익과 비용을 비교 평가하라.
" 재정적으로든 다른 방식으로든 투자 결정을 내릴 때는,
여러분이 이것 아니면 무엇을 했을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라. "
경제용어 중 '기회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그 이면에 있는 결정은 포기했다는 것이다.
답은 없지만 어떤 것이 더 많은 성장을 만들어 줄지,
혹은 더 효율적 일지 심사 숙고 해봐야 한다.
아홉 번째, 누군가가 여러분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라.
" 자신의 결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해명할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은 더 많은 인지적 노력을 기울이며,
따라서 관련 정보들을 더 자세히 분석하고, 더 세련된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
열 번째, 자신에게 거리를 두어라.
" 여러분이 어떤 것을 내일도 원한다면 그것은 중요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만약 그 욕구가 사라져 버린다면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경험적 연구들에 따르면 비합리성은 종종 시간과 함께 사라지는 반면에,
복잡한 결정은 시간을 두고 그것에 몰두할 때 가장 훌륭하게 이루어진다. "
잠시 기다리는 것,
숨을 고르고 집중할 시간을 만드는 것,
반사 체계가 아닌 숙고 체계를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열한 번째, 생생한 것, 개인적인 것, 일화적인 것을 경계하라.
열두 번째, 우물을 파되 한 우물을 파라.
열세 번째, 합리적으로 되려고 노력하라.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물론 100% 맞는 말이라고 할 순 없지만
지금까지 말했던 클루지를 생각하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즉, 예비 효과를 활용하는 것이다.
판단을 하기 전에 '되도록 합리적이고 분석적으로 답하라'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이로서 '합리적', '분석적'이라는 단어와 맥락을 같이하는 부분을 활성시키는 것이다.
책을 읽고서
책의 서문과 본문을 읽었을 때는
다른 심리학과 비슷한 내용을 얘기한다는 생각 했었다.
단지, 마음을 진화론적으로 해석했다는 관점이 색다를 뿐
핵심적인 이론은 여느 심리학 책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클루지를 극복하는 방법을 설명할 때, 눈에 생기가 돌았다.
심리학을 보는 관점이 다른 만큼 심리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도 달랐다.
자신의 충동을 미리 예상하고 앞서 결정하라.
누군가 여러분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라.
이 두 가지가 나에겐 특히 인상 깊게 와닿았다.
덕분에
생각의 폭을 한 뼘 더 넓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문장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독해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인간 심리의 새로운 통찰을 가져다주는 책,
『클루지』를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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