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색의 표지,
이목구비가 선명한 여성의 얼굴,
(여성과 비슷한 눈매를 가진 표지 뒷면의 남성)
주인공인 아이다와 사비에르가 어떤 모습인지 짐작케 해주는 표지다.
참고로 사비에르는 반정부 테러 조직을 결성함으로써 정부로부터 이중 종신형을 선고받은 인물이고
아이다는 사비에르가 이중 종신형을 받았음에도 끝까지 그와의 사랑을 지키고, 평생 함께할 것임을 약속한 연인다.
책은 편지 형식의 소설로 아이다가 사비에르에게 보낸 편지를 순서대로 나열하였다.
편지 각각에 아이다의 일상, 생각, 사비에르에 대한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보여준다.
#_1

"사랑은 짧은 세월에 변하지 않고, 운명이 다할 때까지 견디는 것"
책의 첫 장을 넘기면 볼 수 있는 시의 한 대목이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땐 '사랑'에 대한 시 한 편이구나 하고 넘겼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존 버거가 소설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 문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다는 평생 사비에르를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서약을 위한 혼인을 결심하였고.
두 주인공은 반정부 운동으로 멀어지게 된 서로의 상황을 알았음에도
서로가 가진 감정에 충실해 이뤄지지 않을 혼인을 청구하게 된다.
이러한 대목들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는데, 볼때마다 나는 '사랑'에 대해 묻게 되었다.
소설 속이어서 가능한 건 아닐까?
사랑의 크기가 큰 것이었을까, 평범한 사랑이었지만 지키기 위한 노력이 컸던 걸까?
자신을 위한 것이었을까, 타인을 위한 것이었을까?
어떤 사랑을 하면 평생 얼굴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서로를 이렇게도 갈망할 수 있을까?
사랑이 크다, 사랑이 깊다, 어떤 표현이 맞는 것일까,
마치 끊을 수 없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보는 것과 같이 무언가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_2

"완벽한 건 그다지 매력이 없잔아, 우리가 사랑하는 건 결점들이지."
아이다의 친구 중 한 명이 아이다에게 해준 말이었다.
아이다는 이 말을 듣고 사비에르는 자신의 어떤 결점을 사랑하였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
하지만, 나는 이 문장을 보고 나 스스로의 결점을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타인과의 관계가 힘들어질 때마다 내가 갖고 있는 결점들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빠졌었다.
볼품없는 몸매, 모난 소리만 하는 나의 언어, 찌질한 내면, 음치 박치 …
난 꾸준히 내 결점들을 발견하고, 그 결점을 박멸하듯 고쳐 나갔다.
하지만, 이 문장이 나에게 많은 생각을 가져다 줬다.
사실은 결점 때문이 아니라 그 결점들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진 나의 모습이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어렵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나의 결점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조금 더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조금은 덜 힘들지 않았을까,
막연한 궁금증을 갖고 이 문장을 되뇌어 보게 된다.
#_3

"온종일 덥고 공기는 무거웠어요. 당신에게 시원한 물병을 끊임없이 보내 주고 싶은 날씨였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준 것 같다.
고통 속에서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먼저 떠올린다는 것, 참 따듯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세월을 겪으면서 알게 된 사랑이라는 단어는 많은 감정들을 내포하고 있었다.
설렘, 기쁨, 행복, 걱정, 서운함, 질투, 미움, 그리움, 슬픔 심지어 외로움까지,
가족으로부터 혹은 연인,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배우게 된 사랑이란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감정들이다.
아이다가 말한 저 문장 하나로도 설렘과 행복, 걱정, 그리움, 슬픔 등 많은 감정들이 느껴졌다.
사비에르의 입장에 동화되어 누군가가 나를 먼저 생각해준다는 것에 설렘과 행복이,
아이다의 입장에서 사랑하는 이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과 그 마음이 닿고자 하는 그리움,
결국 닿지 못함을 아는 그 슬픔까지 느낄 수 있었다.
과거엔 이성의 마음을 얻고 싶어 위와 같은 문장들을 억지로 짜 맞춰 내뱉은 적이 있다.
이제 와서 느끼는 것인데, 참 부질없었다.
진심으로 그 사람이 마음에 차면 이러한 말들은 머리에서가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_4

"세상 속에 있다는 것은 고통이다."
이 문장이 한동안 나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우리는 고통 속에 사는 것인가, 아니면 행복하기 위해 고통을 이용하는 것인가,
나는 종종 10km 마라톤을 나간다.
어느 날 문뜩 나의 평소 기록을 갱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솟구쳤다.
그래서 시작 1km를 뛴 이후 전력질주를 했다.
1km가 지나자 숨이 턱 막히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기록을 깨고자 더 속도를 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내가 왜 이렇게 고통 속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나 의문이 들었었다.
그런 고통속에서 8km를 달렸는데,
앞의 전광판에 나의 기록보다 훨씬 앞당겨진 시간을 보게 되었다.
어디선가 힘이 솟구쳤다. 힘차게 달렸다.
이전 기록을 갱신했다.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치며 고통을 호소하는데, 행복했다.
기록도, 고통을 벗어던지고 싶은 내 자신을 이겨낸 것에 행복했다.
그토록 지루했던 시기였는데, 단지 고통을 이겨낸 내 모습 하나로 행복이 찾아왔다.
그때 처음으로 의문이 들었다. "이러한 고통의 끝은 행복이 있는 것인가"
그래서 난 이 한 문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이다.
#_5

"텅 빈 밤에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나면, 커다란 무언가가 내게 찾아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포기가 포기를 하는 사람에게 하나의 선물이 되는 것은 왜일까요."
문장 하나로도 외로움을 표현하는 데는 모자람이 없었다.
사랑은 세상 어떤 것 보다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만,
한편으론 그 사랑으로 인해 세상 어디에도 없을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뇔 수 있는 문장이다.
'A가 X에게'는 비록 허구의 두 인물에 대한 사랑을 그린 편지 형식의 소설이지만,
'사랑'을 깊이 있게 생각해 볼 계기를 심어주는 소설이었다.
밑줄을 친 부분 외에도 아이다는 사비에르와의 추억을 통해 잠깐이나마 사비에르와 함께 있음을 느끼기도 하며,
타인을 통해 사비에르를 보기도 한다.
아이다와 사비에르의 사랑은 함께하는 것을 넘어 관대하고 드넓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자인 나는 소설 속 두 인물을 통해 깊은 사랑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사랑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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